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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방권력의 천박한 권의주의와 매너리즘에 빠진 지방공무원
국제뉴스 정치부 장운합 국장
 
장운합 기자 기사입력  2020/08/04 [11:30]
 

  도그마(dogma)는 철학에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 견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불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되는 일방적인 개념이나 태도를 의미한다.

 

매너리즘(Mannerism)은 직무를 행함에 있어 다양한 방법을 찾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며 현상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러한 비효과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과 태도에 빠져 일할 때를 우리는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공직에 임한 많은 지방공무원들이 반복되는 업무에 익숙해지고, 감사를 수차례 받고, 상사의 의중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때쯤이면 품은 뜻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조직문화에 젖어들게 된다. 이때부터는 적당주의가 몸에 배고 자신이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사실조차 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패기와 적극적인 태도, 소명감, 도전정신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될 대로 돼라’‘내가 무슨 상관있냐’‘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 복지부동과 탁상행정을 당연시 하게 된다. 이는 철밥통이 전제되기에 가능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공무원은 변화에 무감각 해지고 성취감과 소명의식 따위는 쓰레기통에서 조차 찾을 길이 없어진다. 기업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100년을 공들여 키워온 기업이 폐업 위기에 처하게 되고 만다. 지방자치단체를 경제논리에 대입하면 벌써 망해 없어져야할 집단이 대부분이다.

 

과거와 달리 공무원 개인의 능력은 높이 평가 되지만 이들이 조직의 객체가 아닌 조직체가 되면 그 능력은 사라진다. 필자는 자치단체장을 첫 번째 원인 제공자로 지목한다. 단체장의 절대 권력을 가능케 하는 ‘인사권‘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 공무원은 복지부동이 된다. 두 번째로는 간부공무원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망각하고 평점을 휘두르게 되면 하위 직원들은 눈치를 보고 자포자기가 된다.

 

결국 인사가 만사인 셈이다. 신분이 보장되니 해고될 염려는 없다. 복지부동에 무사안일이면 밥걱정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KKCCL’라 한다. ‘까라면 까고’‘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줄만 잘 서면된다’고 하는 은어다. 오죽하면 공무원을 영혼이 없다고 하겠는가,

 

지방공무원의 집단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지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동료가 당하는 불이익에 무관심 해지고 승진의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더 심한 경우에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단체장과 간부공무원의 부당한 지시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공무원노동조합 마저도 집단지성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다. 희망을 잃은 공무원들은 그렇게 영혼을 잃어간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주민이다. 희망을 잃은 공무원이 주민에게 친절할리 만무하다. 주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리 만무하다. 일 못한다고 해고될 일 없다. 오히려 일 하다 실수라도 하면 징계를 당하니 가급적 기피하게 된다. 창의적 행동이나 적극행정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관행이나 관례에 젖은 업무는 반복되고 변화를 거부한다. 공무원 수는 늘어나고 예산은 올라갔지만 주민의 삶은 그다지 변화가 없게 된다.

 

선출된 천박한 권의주의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사실이나 상대의 의견은 무시한 채 권위에 기대어 사람을 대하거나 사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비근한 예로 주민이 과도한 항의로 모욕감을 느꼈다고 고소하는 행위를 필자는 천박한 권위주의라고 한다. 특정인의 의견을 객관적 검증 없이 정책으로 추진하여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천박한 권위주의라 한다. 주민의 의견이나 소속 공무원의 건의를 무시하는 것을 천박한 권위주의라고 한다.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500만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하고, ’아시아 최장 출렁다리를 만들면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설정한다. 이 가설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추론하지 않고 출렁다리를 만들기 위해 온갖 가설을 만들어 낸다. 객관적이지 않은 무리한 추진은 실정법을 위반하게 되고 예산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행정 행위를 마치 군대 전술처럼 전개하는 것이 천박한 권위주의 아닌가,

 

천박한 권위주의를 어떻게 파타할 것인가, 깨어 있는 객체의 집단지성이다. 무능한 권력자와 무능한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여 승승장구하는 꼬라지를 간과해서는 달라질게 없다. 천박한 권위주의에 침묵하는 것은 순응하는 것이고 순응하는 것은 양심을 져버린 행위가 되고,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악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이 된다.

 

천박한 권위주의는 매너리즘을 타파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꼬라지를 즐긴다. 철저히 무시해도 집단적 항거는 없다. 이쯤 되면 권력은 오만해 지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오만해진 권력은 독선을 하면서 독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도그마적 권력은 천박한 권위주의가 되고 이 천박함은 조직을 매너리즘에 빠뜨린다. 결국 천박한 권력에 아첨하는 공무원과 일부 주민을 제외한 지역사회 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져 희망 없는 일상을 반복하게 된다.

 

공무원은 신분을 왜 보장해 주는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민을 위해 당당해저야 한다. 부당한 지시나 압력에 항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리가 아닌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주민 또한 부당함에 항거해야 한다. 주민의 집단지성만이 선출된 천박한 권력을 해고할 수 있다. 천박한 권위주의를 몰아내는 건 지역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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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04 [11:30]  최종편집: ⓒ 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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