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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칼럼]"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농민은 김장 하고 쌀농사 짓고"
 
김영숙 대표이사 기사입력  2016/11/24 [09:55]
   
 

첫서리가 오던 아침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뜨겁고 무덥던 올여름이 채 식기도 전에 흉흉한 소식들이 들판을 메우는 듯 했다.
 
'대풍=쌀값폭락' 작년만 해도 큰소리로 하소연하시던 조합원들이 아예 묵묵 무 답이다. 대체 답이 안 보인다. 가슴이 무겁고 뭔가에 잔뜩 짓눌린 채 기운을 잃어가고 있는, 맥이 없고 풀죽은 모습이라니.... 그렇게 가을을 맞았다.
 
수확기에 들어서 수확이라도 빨리 잘하고 싶었는데 연일 비소식이다. 그렇게 황금 같은 수확 철에 날마다 비소식이더니 '수 발아가 되어 못쓴다느니, 품질이 나빠졌느니 수율이 안 나온다느니' 아~ 참. 하늘 님이 대풍을 조절하시나? 나락농사는 그렇게 농삿군들 가슴을 헤집어놓았다.
 
수매가격회의가 2주 간격으로 열렸지만 무산되었다. 생산면적이 줄었어도 소비량은 더욱 더 떨어진다. 무농약쌀이고 유기농쌀이고 이제 나락(奈落)이다.
 
백만이 넘는 국민들이 청와대를 향하여 돌진하던 날 나는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병원은 무더웠다. 이방 저 방 켜진 tv마다 서울중심부를 가득 메운 시위대소식이었다. 그렇구나. 30년이 되었구나.
 
그렇게 거리를 메우며 외쳐대던 함성들. 1987년의 6월의 거리가 2016년 11월에도 이어지는구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이제 민주화를 넘어 국민주권을 요구하며 권력자들을 포위해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논밭에서 굵은 땀방울을 훔치던 부모님들이 두려움으로 시위대에서 자식들을 끌어내던 80년대 그 치열했던 시절들이 겹쳐진다. 그 어머니는 팔순을 넘은 노인이 되었다. 나는 가난한 농촌에 남은 많지 않은 농삿군 중 한사람으로 남았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자식들을 도회지로 내 보낸 새로운 기성세대가 되었다. 한 세대가 지났는데, 30년을 보냈는데 왜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있을까.
 
◆ "시절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이곳에서 잘 살아보고 싶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정의를 가르치고 있을까? 아이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삶이 영원하지 않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가르치고 있을까. 모든 자연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다 간다는 사실을 누군가 보여주고 있을까?
 
앞이 안 보일만큼 힘든 시절을 지나오면서 가장 기다렸던 것이 사람이었다. 그리고 물질이면 만능할 것 같은 세상을 떠나 하나둘씩 지역에서 정착한다. 몸으로 하는 일을 쉽게 받지 못하지만, 여전히 골치 아픈 일과들이 널려있지만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친환경농업을 하고 친환경농산물을 도시로 공급하고, 신뢰받고 싶고, 즐겁고 싶고. 연로한 조합원들과 함께 늙어가면서 사소한 일들로 밤늦게까지 토론하면서 우리는 아이들의 식탁을 안전하게 책임진다는 뜨거운 사명을 받아 안는다.
 
우리가 사는 땅은 우리 것이 아님을 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들의 우리들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우리들의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다가 갈 것이다.
 
수년전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믿기지 않은 현실 앞에서 메말라갔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고 힘든 만큼 댓가를 얻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진심인지 욕심인지 나아가 폭력인지, 무뢰한인지 구분 짓지 못하는 일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30년 전에 내가 그랬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아직도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묻기만 하지 않고 미어지는 가슴들을 안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고 있다. 제발 물러날 사람들은 물러나고 우리는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고 때가 되면 쌀농사를 짓고. 시절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이곳에서 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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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4 [09:55]  최종편집: ⓒ 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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