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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천 남원 동편제 판소리 명창 인터뷰
“막힌 가슴 시원하게 하는 일이 소리꾼으로서 보람”
 
이승희 기자 기사입력  2016/01/21 [16:14]
▲ 박순천 명창은 동편제의 거두 故 강도근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사진=김도기 기자)    
남원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세 바탕에 관한 전설과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남원은 진정 판소리의 본향이다.
 
춘향가는 남원시내 전체가 무대다. 흥부가 전설은 이백면에 내려온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심청가는 서도에 있는 한 절에서 주지로 있는 스님이 우리나라 선도수행(仙道修行)에 관한 교훈을 이야기로 담은 것이 원형이다.
 
◆ 동편제 거두 故 강도근 명창 만나 판소리 인연
 
국제뉴스가 남원 출신으로 원광대학교 재학시(83)에는 ‘쌀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생운동을 하기도 한 박순천 명창을 만나 박 명창의 삶과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판소리와 인연은 언제 부터인가.
 
- 남원이 고향이라 어려서부터 판소리는 많이 접했었다. 원광대 다닐 때 쌀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악(農樂)을 배우게 되었고, 우리 가락 우리 소리에 대한 흥이 절로절로 나면서 자연스럽게 남원에서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판소리에 끌리게 되었다.
 
소리 공부라고 하면 늦은 나이인 23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 때 고향 남원 강도근 선생을 만나게 되어 졸업 후에도 선생으로부터 소리공부를 했다.
 
대개 소리공부라고 하면 초등학교난 중학생 무렵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데, 대학을 졸업하고 소리인생을 살겠다고 한 점이 선생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 같다.
 
소리 공연 다니실 때 제자로서 모시고 가곤 했는데 “우리 순천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소리공부를 시작한 제자여”라고 자랑하곤 했다.
 
[해설 - 강도근 판소리 동편제 명창 - 강도근 선생은 1918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에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강도근은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다.
 
조선시대 명창으로 추앙되던 송만갑 판소리 전통을 이어받아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 오던 강도근은 환갑을 넘겨 60대 중반에서야 판소리계에 이름을 내기 시작한 은둔 예술인이기도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소리 공부를 시작한 후, 판소리 완창 발표회를 하는 등 꾸준한 소리 공부를 해왔다. 수상 경력에 대해 소개하면.
 
- 아직도 공부 중이라 쑥스럽지만 11년 전인 2005년에 남원 춘향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3시간에 거쳐 했다. 2003년에 ‘고흥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지난 2014년에 ‘뫼솔가야금.가야금병창 전국대회’에서 국회 의장상을 받았다.
 
▶ 소리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와 가장 보람이 있었을 때는.
 
- 소리공부에 입문하고 목 쓰는 방법을 잘 몰라서 무조건 질러대는 창법만 써서 목이 많이 망가졌을 때 가장 힘들었다. 당시 거의 7년은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목이 쉬어서 소리가 맘대로 구사되지 않았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소리가 제대로 익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그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내 소리를 듣고 가슴이 시원하단 얘길 들었을 때다. 소리를 통해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일이 소리꾼으로서 보람이자 기쁨이 아닌가 싶다.
 
▶ 남원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전역에서 판소리로 공연에 초청되기도 하고 각종 축하 행사에 초대되기도 하는 데, 소개하면.
 
- 내 소릴 들으니 속이 시원하다는 소문으로 초청되었으면 좋겠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 등에서 초청되어 축가로 판소리를 했다.
 
기억에 남는 추억은 3년전 남원 운봉면 서어나무숲에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우연히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지리산 산행팀과 만나, 엄 대장의 요청으로 소리 한 대목을 한 것이다.
 
요즘 엄홍길 대장 일대기를 영화화 한 ‘히말리야’가 관객 동원이 계속 느는데, 그때 일이 새롭다.
 
▶박 명창이 갖는 고향 남원에 대한 생각은.
 
- 남원은 지리산 일부를 이루면서도 섬진강 지류인 요천과 섬진강 본류에 젖줄을 대고 사는 사람들의 고향이다.
 
만인의총으로 대표되는 충의(忠義)의 고장이기도 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빼어난 산과 강은 사람들을 풍류 속에서 살게 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본향이 되었고 전통문화가 발달되어 왔다.
 
우리나라 모든 곳이 마찬가지지만 일제와 근대화 과정에서 소리꾼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도 산업화와 서구문명의 유입과 유행으로 전통문화가 대접받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 전통문화는 ‘오래된 미래’
 
해금명인 강은일의 연주 제목처럼 전통문화는 ‘오래된 미래’다. 전통문화를 올곧게 계승 발전시켜야 우리나라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통문화가 대접받는 도시가 되어지기를 바란다.
 
[인터뷰 후기 - 박순천 명창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전통문화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사이에 느끼는 비감(悲感)이다. 유형문화유산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익산 백제문화유산지구만 봐도 그 가치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남원목기’만 해도 눈으로 보이기에 제대로 된 제기(祭器) 한 세트만 해도 비싼 것은 50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무형문화유산은 그 가치가 주관적이다. 판소리만 해도 듣는 관객의 의식 수준과 국악에 대한 감성과 지식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러나 소리공부의 경우 대다수 소리꾼들은 서편제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득음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피눈물 나는 노력 속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 소리공부다.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무형문화유산도 유형문화유산 못지 않게 귀(貴)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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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21 [16:14]  최종편집: ⓒ 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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