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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는 세월'의 주인공 서유석 인터뷰 | ||||||||
서민과 함께했던 한시대 방랑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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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주간현대>는 오는 11월11일 창간 1주년을 맞아 가수 서유석 외 6인의 가수와 함께하는 무료 ‘콘서트’를 도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콘서트에 특별출연하는 가수 서유석씨는 70년대엔 ‘가는 세월’을 부른 통기타 가수로, 80~90년대엔 라디오 교통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 진행자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전북주간현대>는 지난 7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대한가수협회 전북도회 강승원 지회장, 김태권 본지 대표와 박진범 본부장과 함께 인터뷰를 갖고 그의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가수 서유석(66). 그는 ‘가는 세월’을 부른 가수이자 라디오 교통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의 진행자로 운전자와 서민들의 귀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며 ‘국민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이력을 보면 매우 특이하다. 핸드볼 운동선수로, 시민운동, 사업을 하며 가수활동을 했다. 특히 35년 동안이나 방송활동을 하며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한마디로 쉼 없이 변신해온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연출한 것이다. “홀로 아리랑이란 노래 만들고, 지난 1987년 독도 사랑회 법인 만들면서 독도 지킴이로 자리매김 된 것 같아요. 제 노래 들어보면 알겠지만 정권에 약간 삐딱한 노래도 많이 불렀지요. 지금은 북한 어린이에게 우유보내기 운동하면서 지냅니다. 쌀은 군량미라 안 되지만 우유는 안 먹으면 버리게 되니까 북한 어린이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최근 근황이다. 그는 ‘나눔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남북평화재단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현재 6000명의 회원이 매월 만원씩 기부해 살림을 꾸려가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까지 만명의 회원을 모으는 일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가는 세월’ 노래가 성경책(전도서 1장)에 나온다고 말했다. 구세군 자선낭비 홍보대사 이기도 한 그는 가끔 교회나 종교단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나가 대중가요가 아닌 찬송가를 부르며 복음성가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뜬금없이 “가는 세월‘은 가수 윤복희씨가 가사를 만들고, 제가 곡을 붙였어요. 지금은 ’가는 세월‘로 먹고 삽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전부터 후불제 상조회사 (주)가는 세월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사업수단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암담했던 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에 색깔 있는 노래를 많이 부른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불렀는데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술집에서 부르는 노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메시지 전달은 노래가 최고라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노래했다”고 말했다. 지난 1976년 당시 노래 “가는 세월‘은 LP판으로 무려 120만장이 팔렸다. ‘친구야 묻지마라’. ‘세상은 요지경’ ‘홀로 아이랑’ ‘아침이슬’ 등은 당대 최고 인기곡이었다. 운전자들 권익보호에 앞장서다 그는 국가대표(성균관대) 핸드볼 선수 출신으로 가수활동과 교통방송을 무려 33년 진행한 이력의 방송인이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다. 늘 상 따뜻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가 진행했던 ‘푸른 신호등’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유는 단순히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전달자에 머물지 않고 운전자들, 특히 버스·택시 운전기사들과 함께 호흡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교통문제는 직업운전기사들만 운전을 잘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어요. 사회에서 해주는 것 없이 비난만 하니까 그들로서는 미치는 노릇이었죠. 방송을 하다 보니 그걸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라도 그분들에게 애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게 ‘푸른 신호등’의 이름을 건 교통가족 축구대회와 체육대회였어요. 20년 동안 해마다 열었죠.” 그는 운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택시운전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25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들에게 개인택시 자격증을 주는 제도를 건의한 것도, 가벼운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무조건 딱지를 떼지 말고 주의만 줘서 운전자들이 기분 좋게 반성할 수 있게 하자는 ‘엘로 카드제’를 제안한 것도 바로 그였다. ‘어린이는 빨간 신호등’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 등도 그가 만들어낸 말들이다. “교통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는 거예요. 아침부터 방송을 해야 하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거든요. 일찍 일어나기 위해 술도 끊게 되고, 체력관리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하게 되고…. 그러니까 전보다 더 건강해졌어요.” 긍정적인 성격이 젊음비결 연예인 축구단을 처음 만든 것도 그다. ‘소리나’라는 이름으로 당시 유명 연예인은 거의 참석했다. 3쿼터제를 도입한 것도 그때다. 전후반 45분은 너무 벅차고, 20분은 너무 짧아 30분씩 3쿼터제를 운영한 것. 지금은 연예인 축구단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도입됐다. 그는 체력관리에서도 철저했다. 매일 헬스클럽에서 체력을 단련한다. 반드시 일주일 5회 이상 러닝머신에서 3㎞를 뛰며 유산소운동으로 건강을 지킨다. 술은 30년 넘게 아침방송을 하다 보니 자연히 끊게 됐고, 담배는 10년 전에 끊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쯤 귀가하는 그의 규칙적인 생활 리듬은 절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젊었을 때는 축구와 핸드볼로 체력을 관리했다면 지금은 테니스를 즐겨합니다. 60살 넘어 시작한 테니스는 지금도 주말에 이천으로 달려가 한게임 합니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해야 젊어지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마인드. ‘기다리는 마음’이 서유석씨 건강 모토다. “인생이 긴 것 같아도 길지 않고, 그렇다고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저는 명예는 다 가졌어요. 운동선수, 가수, 방송인이라는 3관왕을 달성했으니까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자산운영사들이 모여 만든 투자회사에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이 일을 훌륭히 해내는 것입니다. 또 (주) 가는세월 상조회사에도 적극 역할을 수행해 문화 예술 분야에 족적을 남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여기서 모은 자금으로 1억원을 주는 문화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이든, 사회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사랑’이란 두 글자”라며 “제 인생의 마지막 꿈은 ‘사랑’이란 제목으로 문화예술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 33년 했고 그만둔 날 3월3일 서울 토박이인 가수 서유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장을 지낸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하게 자랐다. 해방둥이인 그는 신촌 창천초등학교와 명문 서울중·고교를 거쳐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머니는 신사임당 초대 수상자로 금란여고 교장을 역임했으며, 아버지는 덕수상고·서울고·성동고 교장을 지냈다. 당연히 가정교육은 엄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 핸드볼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고교대표 때에는 아버지가 학교 교장이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핸드볼 포지션은 골기퍼였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건 우연이다. 성균관대 핸드볼 팀이었던 그는 학도호국단 규율부원 이었다. 당시 어떤 학생이 기타를 짊어지고 등교했는데 학교 규칙상 기타를 뺏어 규율부에 보관하게 되면서 음악을 알게 된다. 기타가 신기했던 그는 “기타를 가르켜 달라”고 졸라 그때부터 기타를 배웠으며 가수의 자질을 키워나가는 계기가 됐다. 일주일에 4일정도 강도 높은 기타 연습을 했다. 당시 체육부장이었던 그는 학교 축제에서 스페인 음악인 환타지아 오악장을 부르며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다. “당시 MC가 구봉서, 곽규석 선생님이었어요. 최희준, 미키, 박상규, 현미씨 등 유명한 연예인이 모두 참석한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으니 집중을 한 몸에 받았죠. 최희준씨가 노래 끝나고 따로 불러 ‘뷰티블 브라운아이’를 불러 보라고 해 멋지게 한곡 했지요” 그후 서유석은 학교 앞 ‘카사노바’라는 국내 최초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카페를 찾은 코미디언 구봉서와 서영춘씨, 동양TV 쇼 담당 PD에게 발탁돼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외국 음악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그는 동양TV 쇼 프로그램인 ‘쇼쇼쇼’에 나가 팝가수 밥 딜런의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노래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을 불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행운을 맞는다. 그 당시 국내 여건상 반전가요나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부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당국에 잡혀갈 때였다. 서유석은 방송에서 바른 말을 잘해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찍혀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후배 가수 양희은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아침이슬’ 명곡을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방송 진행은 동양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처음 시작했다. 가끔 사회를 비판하는 말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 중앙정보부 직원들의 연행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한 적도 있다. 대전으로 내려가 친구가 경영하는 업소에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가는 세월’이다. 이 곡은 1976년 8월에 발표됐는데, MBC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국민애창곡으로 자리매김 됐다. 이듬해 MBC라디오 반공드라마 ‘그림자’의 주제곡 ‘그림자’를 터뜨려 다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황소걸음’과 독도 지키기 운동을 위해 한돌이 작곡한 ‘홀로 아리랑’도 연이어 히트됐다. 지난 1983년부터 MBC 라디오 교통방송 프로그램인 ‘푸른 신호등’의 진행을 맡아 16년7개월 동안 ‘안전교통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방송진행은 총 33년 했고 그만둔 날이 공교롭게도 3월3일이다. 본명: 서유석. 출생: 1945년 1월 8일. 출생지: 서울. 직업 : 가수. 데뷔곡: 1969년 ‘사랑의 노래’ 취미: 핸드볼, 스포츠관람. 학력: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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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12 [10:58] 최종편집: ⓒ jbbreak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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