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HOME > 칼럼 > 특선수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노간주나무...기다림과 자존을 깨우쳐 준 열매
 
데일리전북 기사입력  2012/05/23 [09:33]
노간주나무를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나무땔감을 때서 밥을 짓고 방을 따뜻하게 했다. 연탄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전기 난방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때는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난 73년 이후였으니까.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고 곧장 지게를 지고 산에 올랐다. 나무 등걸도 캐고, 마른 나뭇가지와 들풀을 베고, 솔잎이나 낙엽도 긁었다. 생나무도 꺾었는데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주였다. 노간주나무는 소나무보다 잎에 수분이 적어 불을 지피면 불꽃을 튕기고 톡톡 소리를 내며 잘 탔다.
 
노간주나무를 베는 일은 어린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잎이 가시처럼 뾰족하고 뻣뻣하여 찔리면 아프고 피가 났다. 겨울엔 더 고통스러웠다. 손이 얼고 터서 노간주나무 잎에 찔리면 다른 때 보다 더 쓰리고 아렸다. 어렵사리 한 짐 가득 땔감을 짊어지고 집에 오면 뿌듯했다.
  

   
당시에는 노간주나무를 오직 땔감과 코뚜레나무로만 여겼다. 이름도 잘 몰랐다. 그러니 열매는 더더구나 관심 밖이었고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가을에 검게 익은 열매가 있으면 따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면 약간 단 맛도 나고 송진 냄새가 난 정도의 기억은 어렴풋하다. 그나마 이런 노간주나무를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거의 보지 못하고 잊고 지냈다.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시간이 있어 가끔 산에 다녔다. 그러면서 2007년 봄에 대모산에서 우연히 노간주나무를 다시 보았다. 약 40여년 만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것들보다 키가 크다는 것 말고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찾아보니 여러 그루가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노간주나무 열매를 찾았다. 헌데 이상했다.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관련 자료를 보고서야 암수딴그루임을 알고 바보처럼 혼자 웃었다. 그리고 열매가 한 해에 영글지 않고 2년에 걸쳐 익는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노간주나무를 다시 만난 뒤 몇 그루의 나무를 점 찍어놓고 4년간 틈나는 대로 가서 관찰을 하였다. 무엇을 하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조급하거나 서두르면 안 된다. 1년, 2년, 아니 몇 십 년이라도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열매는 둥글다. 위에는 3개의 실편 끝이 돋아나와 있고 실편 사이에는 1개씩의 얕은 긴 골이 나 있으며 실편 가운데는 짧은 골이 1개씩 있다. 위 끝은 껍질이 벗겨진 듯 다른 부위보다 다소 낮기도 하다. 어떤 것은 열매 아래에도 3개의 실편 모양이 뚜렷하고 실편 끝이 돋아나와 연꽃무늬를 연상시키나 골이나 돋음 줄은 없다.
 
열매 아래에는 포인지 꽃받침인지 모르지만 2중으로 되었다. 크고 넓은 끝이 뾰족한 원형에 가까운 것 3개가 열매에 딱 달라붙고, 이것 바로 아래에는 이 보다 약간 작고 좁은 끝이 뾰족한 것 6개가 딱 달라붙어 있다. 그것의 길이는 0.5㎜이하로 짧고, 6개가 붙어 있는 모습은 별과 비슷하다. 열매자루는 없다. 가지에 딱 붙어 달린다.
 
열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며 익으면 황록색을 거쳐 흑청색, 흑갈색이 된다. 크기는 지름 5~9㎜다. 1년째 초에는 익은 열매보다 좀 작고 1년째 말까지 커져, 이때의 크기는 익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광택은 없으며 열매는 어린 열매나 익은 열매 가리지 않고 겉에 포도처럼 흰 가루가 묻어 있다. 물에 뜬다. 익은 열매는 약간 단맛과 함께 송진 냄새나 양주 진(Jin)의 향이 난다.
    



열매는 익어도 벌어지지 않는다. 열매살은 적고 즙도 거의 없다. 2년에 걸쳐 익으며, 익은 열매는 잘 떨어지지만 적게는 이듬해 봄까지도 달려 있기도 한다. 열매에는 1~4개의 씨가 들어 있다.

씨는 안쪽 면은 편평한 2면이 합쳐져 능각을 이루고 바깥 면은 활모양으로 동그란 하다. 아래는 넓고 동그란 하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고 위 끝은 뾰족하다. 바깥 면을 보면 원뿔 같고, 안쪽 면을 보면 삼각뿔 같다. 열매에 들어 있는 씨의 수에 따라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1개 들어 있는 것은 원뿔형에 가깝고 2~4개 들어 있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원뿔과 삼각뿔로 보이기도 한다.
 
씨 색은 초기에는 대체로 녹색이고(아래는 녹색이고 위는 연한 갈색이다.) 익으면 흰 누런색 바탕에 갈색무늬가 선명해 갈색에 가깝다. 씨의 바깥 면 겉에는 긴 타원형의 무늬가 2~3개 있다. 이 무늬 색은 초기에는 흰빛이 도는 여린 녹색이고 익으면 갈색이 된다. 이 무늬가 향나무 씨에는 없는데 노간주나무 씨에는 있어 나무의 분류에 적용 할만하다.
 
씨 크기는 길이(높이) 4~5㎜, 지름 2.5~3.5㎜다. 크기는 1년 된 것이나 2년 된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광택은 없다. 겉은 초기(1년생)에는 밋밋하고 매끄러운 편이나 익으면(2년생) 위의 약간은 매끈하나 아래 부위는 딱딱한 무늬껍질이 만들어지고 두껍다. 수분이 이루어진 1년째에 씨의 거의 모든 형태나 조직이 만들어지고 2년째에는 기관이나 조직의 생성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기관이나 조직을 성숙시키는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물에 가라앉으나 뜨는 씨도 있다.
    


씨 알갱이는 희다. 껍질은 딱딱하며 씨 크기에 비해 두꺼워 0.4~0.6㎜나 된다.

어린 소의 코에 구멍을 뚫어 끼우는 것을 코뚜레라고 한다. 코뚜레 재료 중에서 가장 흔하고 좋은 것이 바로 노간주나무 줄기나 가지다. 질기고 신축성(탄력성)이 좋기 때문이다. 코뚜레는 만들기 쉽다. 지름 2cm 정도의 줄기나 가지를 40~50cm의 길이로 잘라 껍질을 벗긴다.
 
숯불 등을 쬐어가며 천천히 동그랗게 휜다. 양끝을 모아 고리 모양을 만든 후 모은 부위를 꽁꽁 묶어서 걸어둔다. 묶은 끈을 떼어내도 원형 그대로 되면 그것을 잘 다듬어 10~15개월 된 소의 코청을 뚫어 꿰어놓으면 된다.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같이 직접 만들어본 방법을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래서 난 노간주나무 이름보다 코뚜레나무가 더 친근하다.
 
열매는 한방에서 두송실(杜松實)이라 하여 신경통, 류머티즘, 이뇨 처방약재로 사용한다 한다.

노간주나무는 많은 나무들이 기름진 땅을 찾아 떠나고 남은 버려진 땅, 그 메마르고 나쁜 땅을 터전 삼아 꿋꿋이 자란다. 경쟁 하는 삶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경쟁 없는 삶을 산다.
 
이런 점에서는 나도 같다. 생존의지는 강하다. 가뭄에 견디는 힘, 거름기 없는 땅이나 햇빛이 적은 곳 등 악조건에서 싹을 내어 살아내는 힘도 크다. 잎이 뻣뻣하고 가시 같아 자라는 동안에는 풀을 먹고 사는 야생동물로부터도 안전하다. 새들은 노간주나무 열매를 좋아하여 삶의 터전을 넓히는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렇게 해서 1년에 줄기 지름이 1㎜정도 자란다.
 
다른 나무에 좋은 곳은 양보한다. 정신없이 서둘러 자라지 않는다. 악 조건 속에서는 잠자다 시피하면서 참으며 때를 기다린다. 씨앗 여행은 공짜로 하지 않는다. 단 맛과 솔잎 같은 향긋한 향을 새들의 먹이로 내주어 유료 여행을 한다. 벌레나 동물들이 함부로 먹지 못하게 가시 같은 잎을 만드는 지혜도 돋보인다.
 
노간주나무는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경쟁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라 한다. 아직도 나는 노간주나무의 암꽃과 수꽃을 보지 못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면서 때가 되면 보려한다.
-------------------------------------------------------------------------------
[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2/05/23 [09:33]  최종편집: ⓒ jbbreaknews.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